국내 유일 화약 전문 전시관, 한화 화약박물관


▲한화 화약박물관 본관


늘솔길 공원 ‘화약박물관’은 편백숲 놀이터 위쪽으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한화기념관’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화그룹의 모태이자 한국의 화약산업을 개척했던 ㈜한화 인천공장의 역사적 발자취를 담고 있는 곳입니다. 2006년 공장 이전으로 문을 닫으면서 한국 화약산업의 발상지로서의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기존 화약공장 부지를 그대로 살려 조성한 박물관은 웰컴하우스, 채플실, 화약제조공실, 본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화 화약박물관 본관 전시 모습


늘솔길 공원 숲 속 놀이터에서 이어진 길은 제일 먼저 화약박물관 본관으로 방문객을 안내합니다. 깔끔한 디자인의 단층 건물, 한화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전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곳으로 입구에는 조감도와 점자로 된 안내 표지판, 홍보물 등이 비치되어 있어 관람 전 대략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본관 도입부, 화약을 주제로 한 영상물을 관람하는 ‘인트로 영상관’을 지나 전시장 내부로 들어섭니다. 화약발명에 도전해 온 국내외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화약의 역사’를 시작으로 우리 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온 화약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화약 이야기’,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발전하는 화약’, 다양한 응용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는 ‘앞서가는 화약기술’ 등, 화약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전시관입니다.


▲한화 화약박물관 본관 전시 모습


전시장 한쪽, 한화그룹을 태동시킨 현암 김종희 회장의 동상이 보입니다. 국내 화약 산업사의 개척자로 ‘다이너마이트 김’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분이지요. 전시관 중앙, 공장 부지 모형도를 살펴봅니다. ‘한눈에 보는 인천공장’이라는 타이틀 아래 한국화약 주식회사 창업기부터 2006년 보은공장으로의 이전 완료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공장의 증설현황과 시설배치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화 화약박물관 본관 불꽃놀이 체험관


이곳은 ‘신나는 연화 체험’입니다. 본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관람객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불꽃 모습을 선별, 디자인한 후, 모니터상으로 구현해 볼 수 있답니다. 야자수, 나이아가라, 토성, 반짝이 등등. 불꽃 모양을 직접 고르고 조합하여 디자인하는 재미! 배경지와 배경음악도 선택할 수 있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 만점 전시입니다.


▲한화 화약박물관 성 디도 채플(St.Titus Chapel)


본관을 나오자 만나게 되는 빨간 벽돌 건물, 이곳에는 화약공장 운영당시 임직원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미사를 드리던 성 디도 채플(St.Titus Chapel)이 있습니다. 내부를 들어서자 작은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장운영 당시 매주 금요일 11시마다 미사를 올렸으며, 공장 이전을 앞둔 2006년 5월 미사를 종료하였다고 하네요.

 



▲화약박물관 화약제조 공정실


채플실을 나와 향한 곳은 ‘화약제조공정실’입니다. 작은 터널을 지나 만나게 되는 이곳은 유사시 폭발로 인한 사고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조 건축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화약이 제조되는 공정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옛 ㈜한화 인천공장의 제조공실을 실제와 최대한 유사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1956년 우리나라 최초로 생산된 초안 폭약을 비롯한 뇌관 및 다이너마이트 등 각종 화약제조시설을 실물로 전시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늘솔길공원의 늦가을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갈대풍경


한국 화약 역사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한화 화약박물관, ‘음매 음매’ 양떼도 보고, 정글 숲 타잔이 되어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즐기는 등, 도심 속 이색 나들이 장소로 ‘늘솔길공원’만한 곳이 또 있을까요? 송도에서 차로 20분! 이번 주말 달려볼까요? 부릉부릉~! 앰코인스토리의 송도탐방 스토리는 계속됩니다. (^_^)


TIP. 한화 기념관 & 화약박물관

주소 : 인천시 남동구 논현고잔로168번길 45 (논현동 738-1)

홈페이지 : http://www.hanwhahistoricalmuseum.co.kr/

방문시간 : 매일 10:00~17:00(월요일, 국경일 휴무)

관람료 : 무료

문의 : 032-431-5142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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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이 꿈틀꿈틀 슬슬 기지개를 켜는 겨울의 초입, 환절기를 맞이하여 한바탕 옷장 정리에 박차를 가할 때입니다. 안녕하세요, 앰코코리아 가족 여러분! 이번 앰코인스토리에서는 도심 속 이색 나들이 장소, 소래 늘솔길공원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음매 음매’ 양떼도 보고, 정글 숲 타잔이 되어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즐기고~ 색다른 재미가 가득한 ‘그곳’으로 함께 떠나 봅시다. GO-GO~!


양떼목장과 편백숲 놀이터가 있는 늘솔길공원


▲늘솔길공원 양떼목장,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


양떼목장은 강원도에만 있다? NO-NO~~!! 가까운 인천에 양떼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는데요,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곳! ‘늘솔길공원’은 송도에서 차로 채 20분이 안 걸리는 인천 남동구에 위치합니다. 귀여운 양들이 있는 양떼목장 외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편백숲, 한국 화약의 태동 한화 화약박물관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한 곳은 도심 속 이색 나들이 공간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늘솔길공원 호수위에 비친 도심풍경


양떼목장을 가는 길, 내비게이션에서 ‘드림교회’를 찍자 공원 입구 공용주차장으로 안내됩니다. 그곳에 주차하고 산책로를 따라 슬슬 걸어가자 ‘짠’ 하고 나타나는 호수! 가을볕이 반짝반짝 눈부심을 선사하는 수표, 그 위로 비추는 도심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둘레로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운동 삼아 슬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늘솔길공원에서 즐기는 날것의 자연


늘솔길공원은 친환경 생태 보전구역으로 생물 종 다양성 확보와 친환경 공원 조성을 위하여 풀 깎기, 풀 뽑기 작업 등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덕분에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데요, 좋은 공기도 마시고 자연을 즐기며 한가로이 거니는 여유, 늘솔길 공원에서 만끽해 봅니다.


▲늘솔길공원 양떼목장


산책길을 거닐자 어느덧 ‘양떼목장’에 당도합니다. 아직은 따사로운 날씨에 털옷을 벗은 양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양들을 만나기 전 꼭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수칙이 있습니다. 첫째, 양들은 채소를 먹으면 병이 난다고 합니다. 풀, 잎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야겠지요? 둘째, 그물망에 매달리면 자칫 위험할 수 있으니 보호자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양 발굽 조심! 멋모르고 방심하다 양 뒷발에 차이는 수가 있다니 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양들을 만나봅니다.

 

▲늘솔길공원 양떼목장,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어린이


이곳에 있는 양들은 대략 열댓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울타리 안으로 암수 구분하여 방목 중이며, 근처에 있는 나뭇잎과 풀들을 가져다 직접 먹이 체험도 가능합니다. 평일 오후 인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단체로 나온 어린이 체험단들이 한창 양 먹이 주기에 열을 올리고 있네요. 풀잎을 쥔 작은 손을 뻗자 그물망 사이로 한껏 얼굴을 빼는 양들, 순식간에 낚아챈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 먹습니다. 때마침 양들의 식사시간인지라 관리사분들이 풀을 한 아름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눠 주네요. 덕분에 양껏 체험을 즐기는 어린이들, 양은 아카시아 잎을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늘솔길공원 양떼목장, 오후 5시가 되자 양들은 잠을 자러 들어간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곳 양들에겐 아마도 ‘식후 똥’이 맞겠네요. 잘 먹는 만큼 잘 싸는 양들! 양 엉덩이로 후드득 떨어지는 양 똥을 보자 아이고 어른이고 한바탕 웃음이 터집니다. 아, 늘솔길 공원 양떼목장은 하절기와 동절기를 나눠 관람(체험)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4~9월(하절기) 09:30~17:30, 10~3월(동절기) 09:30~17:00로 정해져 있으니 꼭 시간 확인하고 방문해주세요!


▲늘솔길공원 편백숲 무장애 나눔길


양떼를 만났으니 다음 코스로 ‘편백숲 무장애 나눔길’을 갑니다. 도심에서 만나는 편백숲! 크고 장엄한 편백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덕에 미세먼지에 찌든 폐가 한 번에 청소되는 기분입니다. 나무데크로 이어지는 산책길, 계단이 없는 완만한 경사는 노약자 장애인도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벤치와 흔들의자,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나무 베드도 마련되어 있어 편백이 뿜는 피톤치즈를 마음껏 마셔볼 수 있습니다.



▲늘솔길공원 숲속 놀이터


이곳은 산책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입니다. 범상치 않은 기구들이 일반 놀이터와는 다른 포스를 풍기는데요, 그네는 물론이고 집(zip)와이어까지! 입구의 숲 속 오두막집을 필두로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마치 정글 숲을 연상케 합니다. 모험심이 있어야 하는 몇몇 기구들은 흡사 소아 유격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등, 이색체험이 가득한 편백숲 속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타잔이 되어 신나는 한때를 보냅니다. ‘음매 음매’ 양떼도 보고, 정글 숲 타잔이 되어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즐기는 늘솔길 공원! 이번 주말 나들이 장소로 FIX?


TIP. 늘솔길공원 양떼목장

주소 : 인천 남동구 논현동 738-8 늘솔길공원

대중교통 : 수인선 인천논현역 하차 1번 출구 도보 13분

방문시간 : 매일 09:30~17:30 (4월~9월) / 09:30~17:00 (10월~3월)

문의 : 공원녹지과 공원관리팀 032-453-2850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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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세상에 맞서는 힘

따뜻한 위로와 나지막한 응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20대에 끙끙거린 고민 중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은 겨우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요. 나머지 95%의 걱정거리는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사라져 버린 거예요! 이어진 설문 조사에서 30대, 40대의 응답자들은 고민할 가치가 없었던 고민거리들을 여럿 꼽습니다.


  •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고민
  •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후의 진로 걱정
  • 나를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외로움
  • 적성이나 꿈에 맞지 않는 직업을 택할 것 같다는 압박감
  • 암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
  • 호감을 주지 못하는 외모 콤플렉스



어떠세요? 나도 그랬지, 했던 고민이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어쩌지,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셨는데 화해 안 하시면 어쩌지,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모양 이 꼴이면 어쩌지, 이러면서 당시에는 무척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들이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바뀌고 자신은 변하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오구라 히로시는 고민에 직면했을 때는 답을 구할 것이 아니라, 고민 그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죠. 성공한 사람들은 고민을 해결한 사람들이 아니라, 고민을 던져버린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고민과 불안이 있을 땐 마음이 무척 조급하고 힘겨워집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조차 불안하고, 분명 조금쯤 남아있었던 자신감과 자긍심마저 슬며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변할 겁니다. 고등학교 때의 고민이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다른 고민으로 대체되듯이, 입사했을 때의 고민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고민으로 바뀌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남의 고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객관적이어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잠시 한 발짝 떨어져서 보세요. 전심전력으로 문제에 부딪히기 전에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살필 필요가 있어요. 진심으로 문제에 부딪혀 전력투구하기 전, 상처 입은 내 마음을 원상복귀 시키고, 이 세상과 맞설 나만의 든든한 갑옷인 자존심과 자존감을 단단하게 갖출 필요가 있겠지요. 그다음에 마음껏 고민하세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점에서 시작해 보세요.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고,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책을 읽고, 멘토를 붙잡으세요. 이렇게 온몸을 던져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죠.



오늘은 고민에 맞서는 마음의 채비를 위한 응원의 에세이들을 골랐습니다. 날이 차네요. 손을 따뜻하게, 속을 뜨끈하게, 마음을 따스하게 잘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가장 깊은 절망을 가장 큰 희망으로 바꾸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김인경 옮김, 북하우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힘차게 헤쳐 나온 사람들의 책을 읽곤 합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 새 출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힘을 얻지요. 위인전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시대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희망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오히라 미쓰요의 이 책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책입니다.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된 후 10년 만에 개정판을 발행할 정도로 스테디셀러이지요.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면 여전히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오히라 미쓰요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책에 풀어놓았습니다. 중1 때 왕따를 당해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고, 집을 나가 비행을 일삼다 16살에 야쿠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후에 처참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한자도 제대로 못 읽던 사람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하고, 사법서사(법무사) 시험을 보고, 스물아홉 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비행 청소년을 돕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그녀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혼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기적입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구작가 지음, 예담


구작가는 두 살 때 청력을 잃었어요. 어릴 때는 그저 세상이 조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자라고 나서야 자신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자신이 듣지 못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줄 친구, 귀가 큰 토끼 ‘베니’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이 책은 ‘베니’가 주인공인 그림책이에요. 구작가는 들리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했대요. 사람들이 베니를 좋아해 주어서 기뻤고요. 그러다 어느 날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들리지 않는데 볼 수도 없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절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구작가는 자신의 장애가 축복이자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아직 따뜻한 손과 말을 할 수 있는 입술,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남아 있다고 말이죠. 구작가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어려운 일들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 책이 가슴 뭉클한 이유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꼭 나에게 하는 말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해냄출판사


공지영 작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위녕’은 작가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고, 실제 작가의 딸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랑에 대해, 우정에 대해, 직업에 대해, 삶에 대해, 고통에 대해 딸의 눈높이로 성찰하고, 엄마의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가 위녕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여자든 남자든 성별과 관계없이, 20대든 30대든 나이에 상관없이, 마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보내온 편지를 읽는 느낌이지요. 우리 엄마가 내게 해주면 좋았을 말들, 혹은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들이 마음에 스며들어 위안이 됩니다.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수많은 작가의 글을 빌어 조곤조곤 해주는 이야기가 듬직합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 힘, 현재를 살아갈 힘이 되는 책입니다.



애써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져도 괜찮아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마음의 숲


김연수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산문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읽다 보면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한몫을 하지요. 저자는 묻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그것은 패배인가, 지지 않는다는 말은 반드시 이긴다는 말일까, 라고요. 이 책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경험담이 담뿍 들어간 책입니다. 매일 1시간씩 달리게 되면 인생을 압축적으로 맛보게 된다, 달리기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밖으로 뛰어나가 달리면서 구름과 바람과 나무와 빗방울을 만나고 싶어져요. 사실 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해요. 그 사실을 잘 아는 저자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버티어 이겨내는’ 삶을 권합니다. 삶의 고난 앞에서 다시 한번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면서요. 책을 읽고 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지요.




글쓴이 배나영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추천 책읽기 이벤트 이번 호에 소개된 책 중에 읽고 싶은 책과 이메일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신 독자님 중 선발해 책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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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14 19: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함성우 2017.11.14 20: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3. 유정수 2017.11.15 08:31 Address Modify/Delete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4. 미스터 반 2017.11.15 09:2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
    10월호에 소개된 책 중 '읽고 싶은 책'과 '이메일 주소'를
    비밀댓글로 남겨주신 독자님 중 선발해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이번달에는 2권씩 준비했습니다. (^_^)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2권 준비
    「그래도 괜찮은 하루」 2권 준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권 준비
    「지지 않는다는 말」 2권 준비

    1) 읽고 싶은 책 :
    2) 이메일 주소 :
    3) 하고 싶은 말 :

    ◎ 비밀댓글!
    ◎ 사내독자, 사외독자 모두 응모 가능합니다. ^^
    ◎ 자주 선정되신 분은 동료 선물용으로는 응모 가능하세요. ^^ ●●●●●●●●●●●●●●●●●●●●●●●●●●●●●●●●●●

  5. 2017.11.15 14:5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6. 2017.11.18 12:1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7. 2017.11.18 16:2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8. 2017.11.19 21:0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9. 2017.11.19 22: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앰코인스토리 독자 여러분! 맛집기자 신현주입니다. 체력이 없을 때 기력이 떨어질 때 먹으면 힘이 불끈 솟고 빈혈에도 좋은 생고기! 다들 좋아하시나요? 생고기로 사용하는 부위는 우둔, 앞다릿살로 지방이 거의 없고 단백질 함유량이 많아 다이어트에도 좋은데요! 우리 K4(광주)공장과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첨단의 <금호송정식육식당>에 맛있는 생고기 비빔밥을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저녁에 가면 웨이팅은 기본이고요, 식당 입구에는 테이블이 있어서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요. 메뉴는 생고기, 육회, 꽃살, 갈빗살, 안창살 등 익혀 먹을 수 있는 고기 종류가 다양하고, 한쪽에서는 당일 도축한 신선한 고기만 따로 판매하기도 해요. 식사류는 영양탕, 생고기 비빔밥, 익힌 비빔밥, 떡국 등 가격도 저렴한 편이랍니다. 생고기와 생고기 비빔밥을 먹으러 갔지만, 생고기는 재료가 다 소진되어 이날 아쉽게도 맛보지 못했어요. 제가 가장 즐겨 먹는 메뉴인 생고기 비빔밥의 가격은 8,000원으로, 점심시간에 다녀오기에도 가깝고 저렴해 부담이 없습니다. 비빔밥의 생고기를 더 많이 드시고 싶으시다면 특 생고기 비빔밥(12,000원)을 주문하시면 되어요.






깔끔한 반찬이 기본으로 나오는 이곳은 생고기 비빔밥을 주문하면 한 사람당 시원한 선짓국을 뚝배기에 내어주는데요, 선지와 고기, 콩나물, 무 등이 들어있는 시원한 선짓국은 속을 따뜻하게 달래줘요. 선짓국이 맛있어서 다 먹고 하나 더 달라고 해면 기분 좋게 한 그릇 더 주시는 인심 좋은 맛집이네요.




맛도 좋지만, 음식이 참 빨리 나오는 이곳!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생고기 비빔밥은 우선 생고기가 푸짐하게 듬뿍 얹어져 있고요, 각종 양념과 재료가 들어있어 밥을 비벼 먹으면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든든한 한 끼 식사로 딱이랍니다! 쫄깃한 생고기와 양념, 갖가지 채소와 밥을 잘 어우러지게 비벼서 먹는 생고기 비빔밥은 입에서 참 살살 녹아요. 원두커피 머신과 일반커피 자판기가 있어 후식으로 커피 한잔할 수도 있어요. 남녀노소 좋아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생고기 비빔밥! K4공장과 가까운 맛있는 <금호송정식육식당>은 제가 즐겨 가는 첨단 맛집이랍니다. (^_^)


메뉴 : 생고기 비빔밥 8.000원, 생고기 500g 45,000원, 250g 23,000원 등

주소 : 광주 광산구 첨단강변로 95 (쌍암동 694-101) 금호송정식육식당

영업 : 11:00~20:00 (명절 제외 연중무휴)

전화 : 062-973-0155~6




WRITTEN BY 신현주

여행과 맛집투어를 사랑하는 20대 오피스걸이며 저렴하고 질 좋은 맛집을 찾아 널리 알려주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맛집 사보기자로 열심히 활동 중. 국내나 해외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개인 블로그 운영을 취미로 갖고 있으며,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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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가족 또는 개인이 운전과 정비를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쌉니다.”


포드 자동차의 예전 경영방침을 잘 말해주는 이 유명한 슬로건은, 생전에 헨리 포드가 어떤 기업가적 정신으로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한 자동차 왕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발명은 물론 노동과 시간, 분업화를 통하여 이윤 추구의 극대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그는, 사업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헨리_포드


헨리는 186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부근의 디어본이라는 마을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가족이었지만, 헨리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디어본 일대에서 알아주는 토지 자산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헨리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두 가지 큰 만남의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증기 자동차를 처음 보게 된 것과 아버지로부터 시계를 선물 받은 일이었습니다. 시계가 흔치 않았던 때에 시계 속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쉴 틈 없게 돌아가는 것을 본 헨리 포드는 호기심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깊은 인상은 훗날 그가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며 노동력을 극대화하는 포드주의 생산 시스템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떠나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디트로이트에서 수습 기계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취직한 곳에서는 일주일 만에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공장의 업무를 단순하게 고치는 것만으로도 작업 효율이 증대되고 인력을 감축하여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바람에,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이지요. 그때의 경험으로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을 창의력을 가로막는 집단으로 여기며 평생 불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처음 보았던 증기 자동차의 매력으로 헨리 포드는 증기기관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큰 드라이독 기계공장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간 뒤에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갖고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잡지를 꾸준히 읽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니콜라우스와 고틀리에프가 개발한 가솔린 엔진에 대해 접하고, 자신도 언젠가 가볍고 조그마한 가솔린 엔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다루었던 증기 기관과는 다르게 가솔린 기관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기에 대한 지식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시 짐을 싸 들고 디트로이트로 향합니다. 그때는 결혼한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에디슨 조명회사에 취직하여 퇴근 후에는 가솔린 엔진 개발에 몰두하였습니다. 회사에서도 좋은 기술력으로 인정을 받아 본사의 주임기사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포드와 에디슨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에디슨은 누구보다도 포드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지지하고 격려해주었고, 훗날 자동차로 거부가 된 포드는 고마움으로 에디슨의 초기 실험실을 그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비용을 자신이 내어 에디슨의 전구발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빛의 축제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1896년 6월의 어느 날 새벽, 집 뒤뜰 실험실에서 끙끙대던 헨리는 드디어 자신이 직접 만든 2기통짜리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포드1호’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초기만 해도 미국에서 500여 개가 넘는 자동차 제조회사가 생겨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이었기에 아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까닭이었겠지요. 자신이 만든 가솔린 엔진 장착 자동차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동차 제작자 겸 카레이서였던 윈튼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업자들에게 카레이싱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헨리는 이것을 기회로 여겨 그와 경주해 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은 40마력의 강한 엔진 자동차를 가진 윈튼이 헨리의 26마력짜리 2기통 자동차를 가뿐히 이길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헨리 포드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투자자들이 헨리에게 모여들었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처음 새운 회사 ‘헨리 포드(Henry Ford Co.)’였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공동으로 새운 기술자 때문에 투자자들과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와 결별하게 됩니다. 그 후 석탄 상인이었던 맬컴슨과 손잡고 또다시 회사를 설립하여 큰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부자를 위한 고급형 자동차를 만들기를 원했던 맬컴슨과의 의견 충돌로 또다시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그 후, 그는 계속 자신이 만족하고 추구하는 자동차가 완성될 때까지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모델 A, B, C, F, K 등 여덟 가지 모델을 만들면서 마침내 1908년 10월 1일 포드자동차 T형 모델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흔했던 비포장도로도 거뜬하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의 자동차였지요. 사람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헨리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지향했던 자동차에 대한 그의 생각, 바로 값싼 자동차를 만들어 어지간한 중산층 봉급자도 살 수 있도록 단가를 낮추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포드주의’였습니다. T형 모델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해서 생산단가를 줄이고 한 기계에서는 한 가지 부품만 생산 조립하게 하는 철저한 분업화 과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포드_모터_컴퍼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시간과 노동을 철저히 저당 잡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점심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을 포함해 딱 15분으로 제한하고 근무시간 중에 휘파람을 불거나 말하는 것도 엄격히 금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 내부 감시자들을 두기도 했습니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사람들은 일명 ‘포드 속삭임’이라는 대화법으로 대화하기도 했는데.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복화술로 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작업장 내부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러니 한 일은 포드는 자신의 회사 노동자들은 부업이나 겸업을 금지했는데요, 포드 자신도 젊은 시절, 받은 월급이 적어 하숙비조차 감당하지 못할 때 퇴근 후에 그의 주특기였던 시계를 수리하며 부업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벌곤 했었는데 그것을 잊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문명인 자동차를 통하여 한결 빨라진 생활권과 편리함을 선물해준 핸리 포드. 그와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버린 인간과 시간이라는 근현대사회의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주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지금 여러분이 내고 있는 대가는 무엇인가요.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올해,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글쓴이 한지숙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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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샴페인의 아버지인 피에르 페리뇽(Pierre Perignon)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샴페인의 어머니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페리뇽 수도사의 노력(와인의 2차 발효에서 생기는 압력을 견디는 두꺼운 병과 코르크를 철사로 잡아매는 디자인 적용)으로 샴페인의 보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병 속 효모가 발효되면서 남긴 뿌연 찌꺼기의 효율적인 제거 방법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었다. 샴페인의 매력 중 하나는 플루트처럼 길쭉한 잔에 담긴 연노랑 바탕의 와인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맑고 영롱한 기포들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뵈브 클리코의 발명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 디켄더에 찌꺼기를 거르고 샴페인을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바브 니콜 퐁사르당(Barbe-Nicole Ponsardin)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도시인 랭스(Reims)에서 1777년 12월에 태어났다. 섬유제조업체 경영인이자 정치가였던 아버지 Ponce Jean Nicolas Philippe Ponsardin의 밑에서 부유하게 자라났으며 21세 되던 해에 프랑수아 클리코(Francois Clicquot)와 결혼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은행업, 울(Wool) 무역, 샴페인 하우스 등을 경영하고 있었다. 결혼 후 6년이 지났을 무렵, 남편은 장티푸스에 걸려 안타깝게도 사망하게 되었고 그녀의 나이 27살에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게 된다. 그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나폴레옹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나폴레옹과 조제핀은 그녀의 아버지 소유의 호텔에 머물기도 하였고,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법령에 의해서 랭스(Reins,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시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든든한 배경에다가 그녀의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펀드의 자금에 힘입어 남편의 다른 사업을 접고 오로지 샴페인 하나에 집중하게 되었다. 근대시대 최초의 여성 사업가가 되었던 그녀는 부단한 노력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샴페인 양조기술의 혁신을 이끌고 사업 수완까지 발휘하여 프랑스 물품의 수입이 금지되었던 러시아에까지 샴페인을 판매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샴페인은 발효과정의 특성(2차 병 발효)상 효모가 죽고 나서 만들어지는 뿌연 침전물 때문에 디켄딩을 하고 먹어야 했는데, 뵈브 클리코는 효모 찌꺼기를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는 도구(쀼삐뜨르, Pupitre)와, 방법(르뮈아주, Remuage)을 고안해내었으며, 병 속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방법(데고르즈망, Degorgement)까지 개발하여 샴페인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면, 선반 두 개를 A자로 세워놓고 선반에 구멍을 뚫어서 병을 45도 정도 거꾸로 세워놓을 수 있게 하는 기구(쀼삐뜨르)를 이용해서 샴페인을 거꾸로 꽂아 두면 호모 찌꺼기는 중력에 의해 아래쪽에 서서히 모인다. 이를 규칙적으로 회전시켜 주면 모든 찌꺼기가 병 입구에 모이게 되는데(르뮈아주) 이때 병의 입구를 영하 25~30도의 소금물에 담가 급속히 냉각시키고 병마개를 열어서 얼려진 효모 찌꺼기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데고르즈망)을 고안해낸 것이 바로 뵈브 클리코였다. 과연 샴페인의 어머니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업적을 이뤄냈다. 물론 그녀의 주변에는 전문가의 조언이나 도움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래 사진은 뿌삐뚜르에 샴페인을 꽂아 놓고 일일이 병을 돌리는 Riddling 작업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American Sommelier 채널 https://www.pinterest.co.kr/amsommelier/


그 외에도 1818년에 최초로 로제 샴페인(적포도로 만들어 색이 옅은 장밋빛이 도는 샴페인)을 개발했으며, 레이블에 컬러를 입힌 것도 뵈브 클리코가 최초라고 한다. 그 당시 샴페인은 병에 레이블이 없어서 코르크로 샴페인을 구분했는데 멀리서도 쉽게 보이고 전기가 없었던 그 시절, 밤에 촛불로도 식별이 쉬운 노란색을 사용함으로써 뵈브 클리코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이 노란색 라벨은 특허로 등록해 뵈브 클리코만이 이 컬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샴페인의 이름을 뵈브 클리코로 사용했으며 1972년 창립 200주년을 맞이하여 라 그랑 담(La Grand Dame)을 내놓았는데 이는 ‘위대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뵈브 클리코가 와인 역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 때문에 성공한 여성 사업가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주는 선물 중에 뵈브 클리코가 빠지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참고로 뵈브(Veuve)는 프랑스어로 ‘과부’라는 뜻인데 왜 굳이 그런 이름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우리나라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그 사람의 아픔을 배려하여 이름에 과부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을 꺼리지만, 서양에서는 약자 (힘이 약한 여자와 어린이)를 배려하는 풍토가 있고, 또 그녀는 27세에 남편을 떠나 보냈지만 재혼하지 않고 샴페인과 결혼하여 그녀의 일생을 바친 열정이 있어서 뵈브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샴페인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필자가 샴페인을 소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샴페인 글을 핑계로 횟집에서 조촐한 와인 모임을 기획했었고, 필자가 준비해 간 와인은 바로 뵈브 클리코였다. 와인 케이스도 노란색으로 되어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으며 와인 라벨로 과연 싱싱한 달걀노른자처럼 노란색이어서 보기만 해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뵈브 클리코와 함께 만났던 쥐치회와 성게 알. 무엇보다도 성게 알과의 조화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자칫 느끼하고 비릿할 성게 알에 어울려지는 뵈브 클리코 한 잔. 너무도 사랑스러운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필리핀 성게 알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게 알의 풍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필자도 서서히 샴페인 러버가 되는 것일까. 요즘은 와인을 생각하면 자꾸만 깔끔한 샴페인이 떠오른다. 그 깔끔한 맛과 향은 어떤 와인도 흉내 내지 못할 샴페인만의 매력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가을의 끝자락에서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싶다면, 노란 라벨의 뵈브 클리코와 노란 성게 알의 조합은 어떨까? 와인을 마시고 집에 오는 길에 노란 은행나무 낙엽들이 쌓인 길을 따라 걸어온다면 정말 운치 있는 밤이 될 것 같다.




WRITTEN BY 정형근

우연히 만난 프랑스 그랑크뤼 와인 한 잔으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주위에 와인 애호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보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와인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와인을 신중히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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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


서양, 동양을 막론하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고궁박물관(국립 고궁박물원)입니다. 이곳은 늘 외국 관광객을 붐비는 곳인데, 최근은 상황이 다소 달라졌습니다. 주로 중국에서 온 단체관광객들도 붐비던 곳이, 여기가 고궁박물관인가 할 정도로 사람이 뜸합니다. 유럽에서 손님이 와서 같이 가게 된 금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사진에서 보듯 관광객이 없을 정도네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배경을 안 후에는 이해가 갑니다. 최근에 비공식적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민진당 정권에 대한 압력으로, 중국에서 대만으로의 단체관광을 금지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의 사스 배치 후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 이유와 다소 비슷합니다.


▲한가한 고궁박물관 사진


오히려 이런 상황이 천천히 고궁박물관을 관람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 대영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유명 4대 박물관 중의 하나가 대만의 고궁박물관입니다. 고궁박물관이 유명한 이유는 중국 역사를 대변하는 여러 유물이 많다는 점입니다. 고궁은 중국 자금성을 의미합니다. 고궁 박물원은 중국 자금성에 모아 놓았던 수집품을 중심으로 송, 원, 명, 청대를 통한 국보급 유물이 약 6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모든 유물을 전시하기가 힘들어서 인기 있는 유물을 제외하고는 3개월에서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교체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유물이, 옥으로 조각한 배추인 ‘취옥백채’입니다. (필자는 보지 못했지만 <꽃보다 할배>의 여행 중에도 출연했다고 하는군요)



▲취옥백채 사진과 필자가 찍은 동영상


고궁에 중국 유물이 많은 이유는, 1935년 중국이 일본 침략전쟁을 피해 자금성(고궁)에 있던 유물들을 내륙의 서남쪽 먼 후방으로 임시 이전하였다가, 1949년 내전으로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밀린 국민당 정부가 중요 유물들을 대만의 여러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 유물을 1965년 현재의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게 된 것입니다. 취옥백채(중국어로는 翠玉白菜 Cuìyù Báicài)는 하나의 비취를 이용하여 여치와 메뚜기가 숨겨진 배추를 표현한 조각을 말합니다. 19세기 청나라 광서제의 부인인 근비가 결혼 때 가져온 혼수품이라고 하는데, 흰색의 줄기와 녹색의 잎은 근비의 숭고한 인품을 상징하며, 밤에 시끄럽게 우는 여치와 메뚜기처럼 부부가 행복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황실이 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의미 같습니다. 지난 2014년에는 취옥배추가 비즈니스석에 앉아 일본 도쿄에 도착해 도쿄 국립박물원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하니, 역시 아름다움은 세계도 넘나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유민

강자에 대한 겸손은 의무, 동등한 사람에 대한 겸손은 예의, 약자에 대한 겸손은 숭고함이다. - 李小龍 / 겸손하게 대만문화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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