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대우를 받은 지도 오래되다 보니, 首丘初心이라고, 젊은 시절의 추억이 불쑥불쑥 돋아나곤 한다. 그러던 차에 지난번 여행에 동행한 부산친구가 초청을 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첫 직장의 사연들이 묻혀있는 장소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시험을 보려고 들어간 D 여고의 교문에서부터 추억을 더듬었다. 그곳에서 횡단보도와 철길만 건너면 바로 첫 근무지다. 늘어나는 수출물량을 채우느라 구내식당에서 세 끼니를 때우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휴일이라고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뿐, 20개월간 청춘을 불살랐던 그곳은 상상도 못 한 재래시장의 주차장이 되어 나를 맞았다.
단층의 정미소로 출발하여 필요할 때마다 쌓아 올린 7층 건물은 외관으로는 번듯했지만, 담장 안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데다 건물 내부는 미로처럼 구성된 열악한 환경이었다. 국내 최고 최대의 신발공장으로 사원들의 월급은 최상급이었지만, 여름철에는 고무를 찌면서 내뿜는 50도가 넘는 열기를 온몸으로 안으며 근무해야 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을 쐬기엔 에어컨이 가동되는 은행이 있었고, 부실한 식당 반찬은 길 건너 시장통의 꼼장어 구이로 보충했다. 최대한 빨리 점심 식사를 마치고, 눈치 보며 앉아 있었던 은행은 큰길 건너로 옮겨갔고, 100원에 6~7마리를 구워주던 아주머니들은 수족관을 갖춘 번듯한 횟집 주인이 되어있었다.
몇천 명이 동시에 퇴근하면서 왁자지껄하던 정문은 친구나 애인 만나러 온 청춘남녀, 외상값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빚쟁이, 싸구려 물건 사라고 아우성치던 잡상인들이 눈에 삼삼한데, 어느덧 대형 주차장 출입구가 되어서 기다란 막대기만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치고 답답한 가슴을 열고 싶을 때 뛰어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하던 자성대공원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사 동기들의 수많은 사연을 지켜보았던 상록수들은 변함이 없건만, 시원한 바람을 안겨주던 푸른 바다는 삐죽삐죽 솟은 건물 속에 묻혀서 구름에 가린 하늘만 빼꼼히 보일 뿐이다.
대학 동기에다 입사 동기인 세 명이 이웃하며 신혼살림을 차렸던 골목길은 어렴풋하게 만이라도 기억되지만, 단층이었던 가옥은 2~3층으로 변하여 옛 모습이라고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입사 날에 결혼하여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친구가 살던 집 앞의 (여러 가족이 물지게를 이용해서 물을 날랐다) 공동우물을 찾으려고 여러 번 주변을 헤매도 흔적조차 가늠할 수 없어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늦은 시간 퇴근하면서 거닐던,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도로는 짭짤한 갯바람에 묻어오는 비릿한 생선 냄새로 가득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이 도로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고, 차들의 전조등은 공중을 나는 비행기 불빛같이 운치 있게 보였는데….
고향을 드나들면서 차창으로 바라보며 감탄하던 구포나루를 떠올리면서 상경 때는 비행기를 해약하고 열차에 몸을 맡겼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박한 고향 사투리에 묻어 드는데, 구포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당시에는 석양빛을 등에 지고 한두 척의 황포돛배가 강물을 오르내려서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듯 했는데, 돛배는 오간 데 없고 볼품없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 사이로 희뿌연 연무만 깔려있어 가슴이 아려온다.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나 보다! 추억 속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아쉬움과 바쁘게 돌아다닌 노독이 겹쳐서 긴 하품과 함께 어느새 졸음이 몰려왔다.


글 / 사외독자 박수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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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나와서 자동차 전용도로인 50리 길을 단숨에 달려 샛길로 접어드니 환호성이 터진다. “저기 좀 봐. 부항댐을 가로지른 출렁다리와 집라인(zipline)이야.” 소문으로 듣고 인터넷에서 첫인사를 나눈 그 물건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다시 산등성이 사이로 새로 조성한 신작로를 10여 분 달리니 목적지다.
신축한 회관에 도착하니 재종동생이 반가이 맞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때로는 동생이 반기더니,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때는 노인들이 모인 방을 찾아서 큰절을 드렸는데, 이제는 우리 또래가 어르신이라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행이랄까? 아흔을 넘긴 어머님과 각별하시던 분께서 양손을 부여잡으며 “엄마 생각나지. 전에는 나와 같이 절을 받았는데…”라는 울먹임에 나 역시 목이 멘다.
서울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 45명과 부산, 대구, 김천에서 온 출향민들이 어울리니 100명은 넘을 듯하다. 작은 마을로 변했다지만, 이러한 대인원이 모여서 먹고 즐기는 일은 근동에선 우리 마을만의 자랑거리다. 총회가 끝나자, 비슷한 나이들끼리 차일 속에 자리를 잡았다. 130여 호가 살던 마을은 수몰되고 산등성이에 새로 조성한 15가구의 주민들이 준비한 출장 뷔페를 즐기면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못다 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좋은 일은 늦게나마 축하인사를 건네면 되지만,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소식을 접하니 할 말을 잃는다.
수몰 뒤에 이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많이도 변했다. 집은 철거되어 빈터와 골목길이 물에 잠겼다. 명절 때면 편 담과 중간 담으로 나누어서 돌팔매질하던 산꼭대기는 대지로 변했다. 매일 다니고 뛰어놀던 산천이 물속에 잠겨 추억이라곤 찾을 길이 없는데도 이곳을 고향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한쪽에서는 가수 활동을 한다는 여동생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두어 시간 계속된 여흥도 시들어 갈 무렵, 강을 건너고 수풀을 헤치며 가족 묘역을 찾았다. 맏이로 태어나서 남다른 호강을 누렸지만, 나는 이분들께 해드린 것이 없음을 헤아리며 참회의 절을 드렸다. 잔디 사이로 솟아난 잡초를 뽑으며 회상에 젖다가 내려오니 헤어질 시간이다.
기사께서 여러 번이나 승차를 독촉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한 이야기 또 하며 지내는 통에 40분을 지체하고서야 시동이 걸린다. 그런데 다음 달이 여든이라는 친척형님의 이마에 피가 흘러 또다시 출발이 지연된다. 형님이야 술김에 전봇대를 들이받았다지만, 친척들의 걱정이 보기에 안쓰럽다.
차가 출발하기 전, 할머니 몇 분이 올라오더니 검은 봉지를 돌린다. “별거 아니지만 칠십 이상의 노인들이 정성껏 뜯은 쑥으로 만든 떡이니 고향의 정이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드세요.” 이 말씀이 유일하게 고향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고속도로에 오르는 길, 창밖을 바라보며 수필을 쓰듯 시 한 수를 읊는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찾아간 고향은 단숨에 오십 리 십리 길은 예 같건만 / 부모, 친구는 오간 데 없고 형제들이 벌초하던 선산만이 외로이 맞아주네 / 잠긴 집터엔 만감이 오가지만 산딸기 따 먹던 담장이 추억을 되살리네.”


글 / 사외독자 김성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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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는 꽤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다. 유명한 맛집으로 소개될 크기와 환경은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맛 하나만은 끝내준다. 테이블 두세 개가 간신히 들어갈 비좁은 공간이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모여드는 손님 때문에 온종일 떡볶이를 쉬지 않고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떡볶이 생각이 나서 큰맘 먹고 찾아가면 늘 다정한 미소로 주인장이 맞아주신다. 그리고 넉넉한 인심은 한번 찾아온 손님을 오랜 단골로 만드는 비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맛있는 떡볶이 한 접시를 받아들고 기다란 떡을 콕 콕 찍어보고 있노라면, 문득 내가 떡볶이를 언제부터 먹게 되었더라 떠올려 보게 된다. 중학생 때도 먹고 있었고 초등학생 때도 떡볶이는 주 간식이었기에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많은 떡볶이를 먹어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시장 갔다 돌아오시면 시장 보따리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중에 따끈따끈한 떡볶이 떡도 한 덩어리가 되어 들어있었다. 반나절 동안 놓아두면 하나하나 잡아당기기 좋게 말라 있었고, 한번 먹을 양만큼 떡을 떼어 내고 나서는 떡이 쉬지 않도록 잘 동여맨 후 냉장고에 밀어놓곤 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이었다. 빨간 고춧물이 하얀 떡에 골고루 스며들기 시작하면 어묵과 파를 넣어서 다양한 색깔과 맛이 하모니를 이루는 종합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국물이 졸아들면 군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는 맛있는 엄마표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뜨거우니 물러나 있어.”라는 엄마의 말에 접시를 가지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을 때쯤, 커다란 국자 가득 떡볶이를 퍼서 우리의 접시마다 예쁘게 담아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고대하던 어묵까지 떡 위로 얹어주시는 것 또한 잊지 않으셨다. 그때는 어묵은 흰 떡보다도 싸기는 했었지만 어묵에 눈길이 더 갈 때였다. 지금보다 맛과 질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떡볶이의 참맛은 어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엄마도 아셨는지 늘 어묵 한 장을 더 꺼내어 어묵이 부족하지 않게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우고 나면 얼얼한 입을 달래려 물 사발을 쉬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시고 나야 떡볶이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요즈음은 다양한 떡볶이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고춧가루의 고정관념을 깬 간장 떡볶이는 매운 것에 도전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떡볶이의 참맛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었고, 떡볶이를 색다르게 즐길 수 있도록 찐 계란을 넣기도 하며 떡볶이 소스에 만두며 순대며 콕콕 찍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떡볶이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변한다 해도 그 맛 그대로 우리와 함께할 것 같다. 그리고 떡볶이가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또 어떻게 변신할 기대가 많이 된다. 오늘 저녁에는 엄마표 떡볶이 한 그릇으로 옛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봐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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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면 <도시어부>란 TV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인 이덕화, 이경규, 그리고 마이크로닷이 세대를 뛰어넘어 낚시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원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인내를 필요로 하는 낚시에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리돔, 광어, 우럭, 장어, 놀래미 등등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한참 동안 프로그램에 푹 빠져 보고 있노라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어서 낚시할 기회는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낚시에 흥미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친구들이 낚시하러 가자고 하면 ‘오늘은 집안일 때문에 바빠!’ ‘오늘은 엄마랑 시장에 가기로 했어!’라며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날을 잡아 바다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낚싯대 하나 들고 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친구들은 참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고추장, 파, 마늘, 양념, 김치, 휴대용 버너, 냄비, 라면 등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이사 가냐?”는 말을 꺼내자 친구들은 깔깔깔 거리며 웃어댔습니다.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한번 움직이기 위해서는 참 많은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이 빠진 바닷가는 참 좋았습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하얀 백사장은 아니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바닷길과 마주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서둘러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기 위해 강태공이 된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보다 한 10~20년을 훌쩍 뛰어넘은 어른들을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가을이나 되어야 큰 놈으로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는 데.’라는 친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는 물고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미끼가 없는 상태에서 바보처럼 잡힌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친구는 “망둥어.”라고 짧게 답하고 잽싸게 바닷속으로 낚싯바늘을 던졌습니다. 그때 처음 신기하고 재미있는 녀석, 망둥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나절은 걸려야 물고기 서너 마리 구경하겠구나 예상했는데, 한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너덧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낚시광이었구나!”라고 하자 친구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습니다. 이윽고 한 친구가 “가을이면 한 시간 만에 100마리도 넘게 잡어.”라고 말을 해줬습니다.


“잡을 만큼 잡았으니 이제 매운탕 해 먹고 가자.”라는 친구의 말에 서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친구는 물고기를 능숙하게 손질했고, 또 다른 친구는 버너를 켜고 냄비에 물을 부었습니다. “내가 오늘 솜씨 자랑 제대로 좀 할게.”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믿어 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파, 마늘과 김치, 그리고 물고기를 넣고 고추장까지 푸는 모습이 완전히 초보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라면까지 탈탈 넣으니 그럴싸한 라면 매운탕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뚜껑을 덮고 기다리는 친구의 모습은 의기양양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뚜껑이 열리고 구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숟가락을 냄비에 갖다 댔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입안으로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야외 나오면 어떤 음식이든 꿀맛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맛있다.” “그래 정말 맛있다.” “내가 뭐랬냐?” 각자의 그릇에 라면을 가득히 얹고는 게눈 감추듯 먹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냄비는 라면하며 국물까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라면 끓이는 솜씨가 있다.”라는 말에 친구는 얼굴 가득 미소가 퍼져갔습니다.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가장 맛있는 매운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때 그 친구가 끓여준 그 매운탕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재료와 갖가지 양념이 비싼 생선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바다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그 추억이 살아 숨 쉬던 그 맛을 그 어느 것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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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도착한 월간지를 펼치고서 채 가시지 않은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는다. 향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기 말이 되면 다음 학기에 배울 책들이 교실 앞에 수북이 쌓이고, 우리들은 선생님의 호명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린다. 찢어지거나 끈으로 묶은 자욱이 있는 책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차례가 되어 국어, 셈본, 자연 등의 책을 들고 오면서 맡아보던 그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새 책만 보면 코를 들이민다. 어느 종이나 나름의 냄새를 보유하고 있지만, 새하얀 모조지에서 풍기는 것이 좀 더 진하고 오래 지속되어 미술책이 단연 인기 1위였다. 그런 연유로 고교 때까지 매년 적어내는 취미란의 단골이 독서였다.

요즘의 학생들이야 독서가 취미 축에나 드느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 시골 어린이에겐 자치기, 구멍에 돌 넣기, 술래잡기, 강 건너기, 땅따먹기 등을 제외하고는 놀이라고는 없었으니 고상한 게 독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떠돌이 책 장사의 「플루타아크 영웅전」을 돈이 부족하여 그냥 보냈다가 뒤늦게 시내를 다 뒤져서 구매한 적도 있다.

대학 때는 그 시절에 유행하던 전집류-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 사상전집, 수필전집 등-를 고가에 구매하고 탐독했다. 무장공비 습격사건으로 연장된 군 생활 34개월 18일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세대가 다 그랬듯 토요일도 없다시피 한 30여 년의 직장생활 기간엔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직장을 나와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무료정보지에서 ‘도서 교환전’을 알리는 정보를 보게 되어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도 집에서 잠자고 있는 중고서적을 가져가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70여 권의 새 책으로 교환하였다.

정보를 접하는 순간부터 어느 책과 교우하게 될까 상상하다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책들이 모두 내 것인 것 같아 흥분에 휩싸인다. 교환한 책은 대다수가 신간이지만 헌책은 클리너로 닦고 지우개로 지우고 풀로 붙여서 새롭게 단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을 서고에 드나들면서 포만감에 행복해한다.

실업자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독서가 최고임을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매일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책이란 가까이할수록 남는 게 있기 마련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독서 10년에 사보나 문예지에 실린 글들은 모아서 2권의 수필집도 냈다. 아직도 참고할 만한 어휘가 머리에 담겨서, 제목은 불문하고 1시간을 주면서 원고지 10매 분량의 수필을 지어내라고 하면 읽을 만한 글을 내놓을 자신도 생겼다. 또 하나의 보람은 보관해 왔던 500여 권 중에서 아들과 딸, 조카 2명에게 그들의 개성에 맞을 것 같은 책을 골라서 선물했다. 나머지는 봉사단체에서 비치해둔 전철역 서고와 두 곳의 동사무소가 운영하는 문고에 150여 권의 책을 알게 모르게 기증하니 표창장이 덤으로 따라왔다.

시력이 허락하는 한, 책을 가까이하면서 꾸준하게 글도 써서 기고하고, 보고 난 것은 여러 곳에 기증하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과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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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손자는 얼마나 더 컸을까? 손녀는 많이 자랐을까?’라고 상상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아내의 칠순과 나의 생일이 한여름이어서 올해도 일찍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내가 고생을 하니,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른 채로 집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방으로 이주하고 오랜만이라 1박2일을 보낸다고 하니 고맙지만,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다는 손자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은근히 걱정이 뒤따른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여덟 명이 합창으로 생일 노래를 불렀다. 이쯤이면 손자손녀가 서로 먼저 촛불을 끄겠다고 다투곤 했는데, 며느리에게 사전 교육을 받았는지 뒤로 물러앉으면서 아내에게 양보하는 것이 기특하다. 며느리가 동영상을 찍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한마디 한다고 했더니 의아한 눈치들이다.

“까다로운 나를 만나서 고생 많았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니 자네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갑시다. 사랑해.”하고는 ‘뽀뽀해야지.’하면서 얼굴을 돌리는데, 어느새 아내는 손사래를 치면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실패는 했지만, 소파 밑에 숨겨둔 봉투를 내밀었다. (그들이 떠난 다음 날, 아내가 내민 봉투에는 딸 부부가 손으로 적은 애모사가 적혀있었다. 3년 전 내 칠순 때와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나이 들어 무디어진 우리 부부의 가슴을 뭉클하고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뒤로는 손자의 간청에 의한 각종 놀이가 이어졌다.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오목두기에다 바둑 두기와 바둑알 내치기가 추가되었다. 손자를 상대하기엔 버거워서 모두가 곧 지쳐버리지만, 사위는 옆에서 보기에도 재미있게 게임을 한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게임은 정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사위의 이론인데, 노파심으로 보면 낯선 풍경이지만 이게 오래가는 비결이다. 거기다가 어느 게임이나 이기고 지는 비율이 비슷한 게 신기하다.

손자가 다른 게임을 원하는 눈치인 것 같아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할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동영상이 있는데 같이 볼까?” ‘상트페트로부르크와 발트 3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사인 친구가 세 대의 사진기로 번갈아 찍어서 1시간 12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왔다. 장면에 맡게 글도 넣고 적절한 배경음악도 깔아서 여러 번을 보아도 재미가 있었지만, 손자가 보기에는 지루하리란 생각은 했다. 3분쯤 보더니 “심심해!”를 연발해서 필름을 빨리 돌려서 ‘아비와 아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동상 장면을 보여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야하잖아.’하면서 자리를 뜬다. 따라쟁이인 손녀가 같이 가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다.

큰방에서 몇 번이나 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아주 큰 소리구나.'하는데 손녀가 눈물을 닦으며 달려 나온다. “왜 동생 쪽으로 공을 차서 울리냐.”며 아들이 방으로 향하는데, 손녀가 양팔을 벌리며 앞을 막는다. 울먹이면서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야. 장롱이 잘못해서 맞았거든. 어린이를 봐주어야지.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게 헷갈린다.’


평소처럼 9시가 조금 넘어서 방에 들어가니 장롱에 ‘장농이 잘못해서’라고 삐뚤삐뚤하게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10여 분 동안, 손자손녀의 티 없고 해말간 웃음보따리가 연거푸 터진다. ‘내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시나브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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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장인어른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올라오는 길에 자동차를 타고서 ○○정부종합청사를 휘둘러보았다. 청사는 완공되었다지만, 주변에는 띄엄띄엄 공사 중인 건물들이 대다수라 삭막했다. 주말부부로 이곳에 살던 아들은 구내식당 말고는 밥 한 끼 먹기도 어렵고 병원, 의원이나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가져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어린이날에 ○○시로 이사한 아들이 집들이를 한다고 하여 사위가 운전대를 잡았다. 특별한 날인지라 내비게이션이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꼬박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엉덩이가 아프고 화장실이 그리운데도 휴게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과천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한식집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음식점은 반찬 수도 많고 맛깔스럽다.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층 아파트 숲 사이로 빈 곳도 보이지 않고, 대도시를 목표로 기반 시설도 갖추고 생활 밀착형 점포도 들어서서 더는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는 청사까지 걸어서도 10여 분 거리고, 3년 된 새집이었다. 전에 살던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비하면 따뜻하고 수납공간도 많고 베란다를 확장해서 훨씬 넓게 보였다.

더구나 손자가 3학년으로 전학한 학교가 3분 거리고, 창문으로 보면 학교 가는 모습도 다 볼 수 있어 안심이다. 매입한 줄로 알았는데 2년 계약한 전세라는 것이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손자가 “나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어요. 2학기에는 꼭 반장을 할 거예요.” “오빠, 꼴등은 누구야?” “….” “오빠구나!” 발로 동생을 걷어차면서 전쟁의 시작이다.

나와 아들과는 달리 모든 일에 열성적인 손자가 대견스럽다. 지난 학교에서는 1~2학년 때 축구대표팀에 합류했고 전교생 앞에서 둘이서 하는 줄넘기에도 손을 번쩍 들어 참여했다. “아는 친구도 하나 없는데 떨어진 게 당연하지. ○○은 착하고 똑똑해서 친구도 많이 사귈 것이고 공부도 잘할 것이니 2학기에는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전세로 얻은 이유는 예상대로 손자 손녀의 교육문제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들의 교육문제로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고 아내가 동조해서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과거가 불현듯 떠오른다. “너희가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대책을 세우리라 생각한다.”

다과를 마치고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다음 주에 고양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해외여행 때문에 못 가게 된 것이 아쉬웠는데, 기분 전환이 된 셈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인공호수로 어린이날을 맞아 수많은 볼거리와 놀 거리로 시끌벅적하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손자 손녀는 바이킹을 타겠다고 사라지고 우리는 구름다리를 오가면서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늘로 오르는 바이킹을 타고 온 손녀는 “오빠는 15단계인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나는 10단계까지 올라갔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그런다. 저녁으로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고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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