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도착한 월간지를 펼치고서 채 가시지 않은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는다. 향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기 말이 되면 다음 학기에 배울 책들이 교실 앞에 수북이 쌓이고, 우리들은 선생님의 호명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린다. 찢어지거나 끈으로 묶은 자욱이 있는 책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차례가 되어 국어, 셈본, 자연 등의 책을 들고 오면서 맡아보던 그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새 책만 보면 코를 들이민다. 어느 종이나 나름의 냄새를 보유하고 있지만, 새하얀 모조지에서 풍기는 것이 좀 더 진하고 오래 지속되어 미술책이 단연 인기 1위였다. 그런 연유로 고교 때까지 매년 적어내는 취미란의 단골이 독서였다.

요즘의 학생들이야 독서가 취미 축에나 드느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 시골 어린이에겐 자치기, 구멍에 돌 넣기, 술래잡기, 강 건너기, 땅따먹기 등을 제외하고는 놀이라고는 없었으니 고상한 게 독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떠돌이 책 장사의 「플루타아크 영웅전」을 돈이 부족하여 그냥 보냈다가 뒤늦게 시내를 다 뒤져서 구매한 적도 있다.

대학 때는 그 시절에 유행하던 전집류-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 사상전집, 수필전집 등-를 고가에 구매하고 탐독했다. 무장공비 습격사건으로 연장된 군 생활 34개월 18일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 세대가 다 그랬듯 토요일도 없다시피 한 30여 년의 직장생활 기간엔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직장을 나와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무료정보지에서 ‘도서 교환전’을 알리는 정보를 보게 되어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도 집에서 잠자고 있는 중고서적을 가져가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70여 권의 새 책으로 교환하였다.

정보를 접하는 순간부터 어느 책과 교우하게 될까 상상하다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책들이 모두 내 것인 것 같아 흥분에 휩싸인다. 교환한 책은 대다수가 신간이지만 헌책은 클리너로 닦고 지우개로 지우고 풀로 붙여서 새롭게 단장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을 서고에 드나들면서 포만감에 행복해한다.

실업자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독서가 최고임을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매일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책이란 가까이할수록 남는 게 있기 마련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독서 10년에 사보나 문예지에 실린 글들은 모아서 2권의 수필집도 냈다. 아직도 참고할 만한 어휘가 머리에 담겨서, 제목은 불문하고 1시간을 주면서 원고지 10매 분량의 수필을 지어내라고 하면 읽을 만한 글을 내놓을 자신도 생겼다. 또 하나의 보람은 보관해 왔던 500여 권 중에서 아들과 딸, 조카 2명에게 그들의 개성에 맞을 것 같은 책을 골라서 선물했다. 나머지는 봉사단체에서 비치해둔 전철역 서고와 두 곳의 동사무소가 운영하는 문고에 150여 권의 책을 알게 모르게 기증하니 표창장이 덤으로 따라왔다.

시력이 허락하는 한, 책을 가까이하면서 꾸준하게 글도 써서 기고하고, 보고 난 것은 여러 곳에 기증하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과지만, 독서를 취미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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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가족이 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손자는 얼마나 더 컸을까? 손녀는 많이 자랐을까?’라고 상상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아내의 칠순과 나의 생일이 한여름이어서 올해도 일찍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내가 고생을 하니,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른 채로 집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방으로 이주하고 오랜만이라 1박2일을 보낸다고 하니 고맙지만,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다는 손자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은근히 걱정이 뒤따른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여덟 명이 합창으로 생일 노래를 불렀다. 이쯤이면 손자손녀가 서로 먼저 촛불을 끄겠다고 다투곤 했는데, 며느리에게 사전 교육을 받았는지 뒤로 물러앉으면서 아내에게 양보하는 것이 기특하다. 며느리가 동영상을 찍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한마디 한다고 했더니 의아한 눈치들이다.

“까다로운 나를 만나서 고생 많았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니 자네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갑시다. 사랑해.”하고는 ‘뽀뽀해야지.’하면서 얼굴을 돌리는데, 어느새 아내는 손사래를 치면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실패는 했지만, 소파 밑에 숨겨둔 봉투를 내밀었다. (그들이 떠난 다음 날, 아내가 내민 봉투에는 딸 부부가 손으로 적은 애모사가 적혀있었다. 3년 전 내 칠순 때와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나이 들어 무디어진 우리 부부의 가슴을 뭉클하고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뒤로는 손자의 간청에 의한 각종 놀이가 이어졌다.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오목두기에다 바둑 두기와 바둑알 내치기가 추가되었다. 손자를 상대하기엔 버거워서 모두가 곧 지쳐버리지만, 사위는 옆에서 보기에도 재미있게 게임을 한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게임은 정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사위의 이론인데, 노파심으로 보면 낯선 풍경이지만 이게 오래가는 비결이다. 거기다가 어느 게임이나 이기고 지는 비율이 비슷한 게 신기하다.

손자가 다른 게임을 원하는 눈치인 것 같아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할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동영상이 있는데 같이 볼까?” ‘상트페트로부르크와 발트 3국’에서 아마추어 사진사인 친구가 세 대의 사진기로 번갈아 찍어서 1시간 12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왔다. 장면에 맡게 글도 넣고 적절한 배경음악도 깔아서 여러 번을 보아도 재미가 있었지만, 손자가 보기에는 지루하리란 생각은 했다. 3분쯤 보더니 “심심해!”를 연발해서 필름을 빨리 돌려서 ‘아비와 아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동상 장면을 보여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야하잖아.’하면서 자리를 뜬다. 따라쟁이인 손녀가 같이 가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다.

큰방에서 몇 번이나 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아주 큰 소리구나.'하는데 손녀가 눈물을 닦으며 달려 나온다. “왜 동생 쪽으로 공을 차서 울리냐.”며 아들이 방으로 향하는데, 손녀가 양팔을 벌리며 앞을 막는다. 울먹이면서 “오빠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야. 장롱이 잘못해서 맞았거든. 어린이를 봐주어야지.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게 헷갈린다.’


평소처럼 9시가 조금 넘어서 방에 들어가니 장롱에 ‘장농이 잘못해서’라고 삐뚤삐뚤하게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10여 분 동안, 손자손녀의 티 없고 해말간 웃음보따리가 연거푸 터진다. ‘내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시나브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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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장인어른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올라오는 길에 자동차를 타고서 ○○정부종합청사를 휘둘러보았다. 청사는 완공되었다지만, 주변에는 띄엄띄엄 공사 중인 건물들이 대다수라 삭막했다. 주말부부로 이곳에 살던 아들은 구내식당 말고는 밥 한 끼 먹기도 어렵고 병원, 의원이나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가져가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지난 어린이날에 ○○시로 이사한 아들이 집들이를 한다고 하여 사위가 운전대를 잡았다. 특별한 날인지라 내비게이션이 원하는 대로 운전을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꼬박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엉덩이가 아프고 화장실이 그리운데도 휴게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과천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한식집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음식점은 반찬 수도 많고 맛깔스럽다.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층 아파트 숲 사이로 빈 곳도 보이지 않고, 대도시를 목표로 기반 시설도 갖추고 생활 밀착형 점포도 들어서서 더는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는 청사까지 걸어서도 10여 분 거리고, 3년 된 새집이었다. 전에 살던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비하면 따뜻하고 수납공간도 많고 베란다를 확장해서 훨씬 넓게 보였다.

더구나 손자가 3학년으로 전학한 학교가 3분 거리고, 창문으로 보면 학교 가는 모습도 다 볼 수 있어 안심이다. 매입한 줄로 알았는데 2년 계약한 전세라는 것이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손자가 “나 반장 선거에서 떨어졌어요. 2학기에는 꼭 반장을 할 거예요.” “오빠, 꼴등은 누구야?” “….” “오빠구나!” 발로 동생을 걷어차면서 전쟁의 시작이다.

나와 아들과는 달리 모든 일에 열성적인 손자가 대견스럽다. 지난 학교에서는 1~2학년 때 축구대표팀에 합류했고 전교생 앞에서 둘이서 하는 줄넘기에도 손을 번쩍 들어 참여했다. “아는 친구도 하나 없는데 떨어진 게 당연하지. ○○은 착하고 똑똑해서 친구도 많이 사귈 것이고 공부도 잘할 것이니 2학기에는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전세로 얻은 이유는 예상대로 손자 손녀의 교육문제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들의 교육문제로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고 아내가 동조해서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과거가 불현듯 떠오른다. “너희가 심사숙고해서 현명한 대책을 세우리라 생각한다.”

다과를 마치고 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다음 주에 고양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해외여행 때문에 못 가게 된 것이 아쉬웠는데, 기분 전환이 된 셈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인공호수로 어린이날을 맞아 수많은 볼거리와 놀 거리로 시끌벅적하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손자 손녀는 바이킹을 타겠다고 사라지고 우리는 구름다리를 오가면서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늘로 오르는 바이킹을 타고 온 손녀는 “오빠는 15단계인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나는 10단계까지 올라갔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그런다. 저녁으로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고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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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이 나이가 되었지만, 오늘도 그러다가 10분 늦게 63빌딩의 프런트에 도착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승강기 앞에서 중견 탤런트 임○○ 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80대 부부를 에스코트하여 57층으로 오르던 그분은 깔끔하게 생긴 외모답게 친절하게도 58층을 눌러주고 축하 인사도 해주었다.

사돈과 인사를 나누기도 바쁘게 사회자는 잃어버린 10분을 되찾으려는 듯 단상의 의자로 몰아세웠다. 우리 앞으로는 회갑연이나 돌잔치에서 익히 보아왔던 과일과 케이크 등 장식품이 사진발을 좋게 받도록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챙길 시간도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소리는 요란하고, 난생처음으로 권총처럼 생긴 것으로 불을 붙이고 끄느라 여러 번을 반복했다. 축하 노래를 듣고 자식들의 삼 배도 받았다.

손주 차례가 되니 그새 지루했던지 머리를 숙이고 몸을 꼬면서 “절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며 며느리 주위를 맴돈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한 번의 절을 받았다. 사회자가 말하는 삼 배는 ‘일 배는 낳아주어서 고맙다는 뜻이고, 이 배는 키워주신 데 대한 보답이며, 마지막은 효도하며 모시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절한 후에 받은 축하인사 답례로 아들 부부에게는 “100살이 아니라 120살까지는 사시라고 해야지.”하고, 딸 부부에게는 “손주 하나 안겨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가끔 아내에게 “오늘 밤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는데, 120살이라니.” 앞으로 두고두고 책잡힐 생각을 하니 후회막급이다.

올 초에 며느리가 “아버님, 칠순 준비를 어떻게 할까요?” 묻기에 “여행 경비는 한 푼도 안 받을 것이니 잔치는 30명을 생각하고 호텔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100시대라고 해서 그런지 칠순 잔치를 하는 분들이 적어서 사돈 부부만 초청한 조촐한 행사가 되었으나, 태생이 음주와 가무에는 끼도 흥도 없는 몸이라 나쁘지는 않다. 아들은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피곤한 몸이라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무리고, 며느리도 직장과 애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도 명소를 골랐으니 고맙고 사랑스럽다. 사돈께서 “칠순을 축하하며, 건강과 장수를 위하여!”를 외치면서 와인 잔을 부딪치며 중식을 시작했다. 주식으로는 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나왔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 연회를 즐기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비친 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손자손녀와 태권도 겨루기를 끝으로 추억으로 남을 한 페이지를 접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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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주머니 안에서 백 원짜리들이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고 있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듯 울리는 소리는 꽤 상쾌하다. 지금은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동전이지만, 주머니 가득 100원, 500원짜리가 있으면 행복감이 절로 생길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100원짜리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버스를 한번 타려고 해도 100원짜리 가지고는 엄두를 낼 수 없고,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집으려 해도 100원짜리 한 주먹 가득 계산대 점원에서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100원짜리도 한때 참 귀하신 몸일 때가 있었다. 1원, 5원짜리 동전이 있을 때는 더더욱 큰 형님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어린 꼬마들에게 100원짜리 서너 개면 종일 오락실에서 진을 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심부름을 하고 받은 몇 개의 100원짜리는 문방구에 가면 많은 것을 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야 할지 사방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면, 조바심 난 문방구 주인아주머니는 “요즈음 인기 있는 로봇이다.” 은근슬쩍 들이밀었고 그 짧은 순간 갈등과 고민이 반복되었다. ‘과연 뭘 사지?’ 미적거리는 것이 미안해서 더 미루지 못하고 주인아주머니가 골라준 장난감을 집고 나서 100원짜리 몇 개를 건넬 때면 끝없이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내 돈 100원짜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 엄마는 우리 사 남매에게 연초에 선물을 주셨다. 빨간색 돼지저금통. 큰 돼지저금통은 꽉 채우는 게 지루할 수 있다는 소신이 있으신 엄마 덕분에 중간 크기의 돼지저금통을 선물로 받곤 했다. 가장 먼저 돼지저금통을 꽉 채운 사람에게는 100원짜리 몇 개의 보너스도 있을 것이라 하셨다. 지폐가 귀했던 때라 대부분이 100원짜리 동전이 주를 이루었다. 처음 100원짜리가 돼지저금통 바닥에 떨어지면 참 큰소리를 냈다. “땡그랑! 땡그랑!”

언제 저 넓고 깊은 저금통 안을 꽉 채우지!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명절 때 받은 용돈을 넣고, 심부름으로 받은 100원짜리 넣고, 참고서 사고 남은 동전을 넣다 보니 돼지저금통도 점점 배가 불러 올랐다. 돼지저금통을 반 정도 채우고 나서는 흔들어 보면서 참 기뻤던 때도 있었다. 동생 몰래 동생 돼지저금통을 보며 어느 정도 채워졌나? 눈대중을 해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쯤 가득 찬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게 되었을 때 벅차오르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동전들을 보며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참 열심히 노력했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사 남매의 가득 쌓인 동전들을 보면서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셨던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서도 남은 동전은 포인트로 적립되고, 모바일 페이가 일상화되면서 동전을 딱히 지니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뭔가 쥘 수 없는 허전함은 남아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땡그랑 울리던 그 동전들의 소리는 자꾸만 그리워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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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과 경험이 도움이 된 여행이었다. 쿠알라룸푸르공항은 여러 번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우리 부부에게도 당혹스러운 곳이었다. 기내를 나서자, 반겨준 곳은 면세점이었다. 그곳을 지나니 드램이 기다리고 있어서 출국장으로 향한다는 사인을 확인하고서야 탑승을 했고, 내리니 다시 면세점들이었다. 걱정하면서 Luggage Claim이라는 글자를 따랐더니 드디어 입국장이 나왔다.

늦었다는 미안함으로 가이드를 만나니 열여덟의 일행 중 선착이었다. 30분이 지나서야 두 명이 합류했고, 한 시간이 지나도 20대 아가씨 두 명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다가오더니 “짐이 보이지 않아서 찾는 중”이라기에 “싱가포르로 짐을 부쳤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게 정답이었다. 1시간 반이나 늦은 탓에 백만 불 야경이라고 선전한 ‘푸트라 자야’ 감상시간은 대폭 축소되었고, 환상적이라는 ‘반딧불 축제’도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역사도시인 ‘말라카’를 왕복하는 네 시간여 정도 야자수 사촌인 팜나무가 뒤덮인 숲속이어서 힐링의 시간이었다. 농가도 농작물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의아했는데, 이 나라에서 농작물에 종사하는 인구는 10% 미만이란다. 석유 매장량이 많아서 개발도상국이라지만, 화장실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물도 잘 안 나와서 우리보다 한참이나 뒤졌음을 알렸다. 경주와 비견할 만하다는 고도 ‘말라카’ 여행에 하루를 할당받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차이나타운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었고,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도 작고 낡아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해, 못내 서운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힌두교 최대성지인 바투동굴에서는 50도 경사의 272개의 죄악을 고해하며 걷는다는 계단을 오르내렸고, 눈에 담은 거대한 황금동상도 신비했지만 웅장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내부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올려다본 햇살이 경이로워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힘든 계단 오름을 원숭이가 여행객의 콜라 캔을 낚아채 가는 묘기(?)를 보여서 피로를 잊기도 했다.

이 나라의 가장 긴 교량과 트윈타워를 비롯하여 대형 빌딩 대다수를 국내 5대 건설사가 건축했고, 네일아트를 포함한 미장원이 부유한 화교여성들을 매혹하고 있으며, 수학학원이 성업 중이라 한국인을 존중한단다. 왕궁 뒤로 보이는 가장 비싼 아파트의 주인도 교포라며 가이드는 자부심에 넘쳤다.

One Day Tour인 싱가포르는 이곳과는 많이도 달랐다. 말레이시아가 정적이라면 이곳은 동적이었다. 기내에서 내려다본 해상에는 무역선들로 가득 찼고, 수많은 나라의 국적기들을 보면서 무역과 관광업의 나라임을 한눈에 인식할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이나 아파트도 같은 형태의 모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인답게 축구장 50배 면적에 60만여 종의 식물이 있다는 Botanic 정원과 37m 높이의 Merlion 상이 ‘고요한 동방의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기를 꺾어 놓았다. ‘Jurong 새 공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새 테마파크로 400여 종 5,000마리 이상의 새가 서식하고 있다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도는 중에 앵무새와 홍학만 눈에 띄어서 마음이 편했다. 야심작이라고 선보인 ‘All Star Bird Show'는 에버랜드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였다. 화려한 야경 투어는 싱가포르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원주에서 동참한 50대 부부가 실수를 거듭하는 것을 목격하고 여행 팁을 알려주었더니 식사 시 테이블도 공유하고 헤어질 때는 전화번호를 물으면서 “원주로 한번 오세요.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로 우리 부부를 즐겁게 했다. 아직도 패키지 투어로 다른 나라, 다른 마을로 떠나는 일차적인 여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을 더 이해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이 탐험하기 위해, 관계와 사람으로 떠나는 인간다운 장기간의 자유여행을 하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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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으로 대출기한이 가까이 다가오다 보니, 겸사겸사 도서관에 오게 된 것이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것만 하다 보니 열람실을 굳이 찾을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열람실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다웠다. 한동안 뚝딱뚝딱 소리를 내며 공사를 했었는데,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열람실의 이미지라면 긴 다리 책상에 칸막이와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는 공간이었는데,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좌석표도 따로 없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노트북을 켜고 자신의 공부에 몰두하였다.

커다란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에 푹 빠져 있던 친구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문을 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보았다. 중앙 약간 왼쪽에 탁자와 의자가 비어있었다. 대부분 홀로 공부를 하기 위해 찾다 보니 1인 테이블이 더 인기 있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오리진」 2권 하반기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수시로 깰 뿐이었다.

집에서 읽을 때보다 몰입도가 높아서인지 읽는 속도를 빨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책에만 푹 빠져 있을 수 있었다. 한 3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에서 눈을 떼었다. 같은 자세로 장시간 있다 보니 어깨와 허리가 결리는 기분이 들어 열람실을 잠시 빠져나온 것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복도에는 학교를 파하고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단을 오르는 혹은 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득, 공부에 열정을 갖고 대들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도서관이 놀이터이다시피 했다. 거대한 포부와 희망을 품고 주말이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친구와 안 풀리는 수학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리저리 풀어보면서 대여섯 시간을 씨름하면서 고민고민을 하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많은 학생 틈바구니에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학생과 마주치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아무 말 못 하던 그때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 매점의 라면은 유난히 맛이 있어서 친구보다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뜨거운 라면을 쉼 없이 흡입했던 그 결기는 지금 돌아보면 부럽기만 하다. 세월이 지나 도서관의 풍경은 많이 변해 버렸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 보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는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어려웠던 순간 속에서도 도서관을 찾으면 새로운 힘이 샘솟았고, 꿈 하나만을 좇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행복감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2권의 책을 다 읽고 기분 좋게 반납을 하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두 권의 책을 비워낸 가방은 새털만큼 가벼웠다. 하지만 마음만은 지식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고, 도서관에 대한 추억으로 더 많은 행복을 대출받아 나올 수 있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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